검색결과
' 빨치산'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3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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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1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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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47년. 감옥살이30년! 통일! 통일! 통일 조국! 한을 품고 죽어간 빨치산-고 김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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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31702
날짜 : 1991.06.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박용길
요약설명 : 후에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30년을 수감하다 풀려나서 사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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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탄압의 망령는 즉시 이땅에서 사라져야 한다-실천문학사 이석표 사장의 언행과 『빨치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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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866665
날짜 : 1991.07.22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한국출판문화운동동우회
요약설명 : 『빨치산의 딸』2064부의 압수에 대한 항의 및 실천문학사에 대한 탄압 중지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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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옥살이 35년, 석방 1년만에 한산섬에서 외롭게 죽어간 빨치산 고 정대철선생 추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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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126925
날짜 : 1990.12.04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민주화운동자료관추진위...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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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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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당시 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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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21587
날짜 : 1963.12.13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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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 빨치산 총사령관 등 증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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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721788
날짜 : 미상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경향신문사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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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이태의 소설 남부군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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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57932
날짜 : 1988.00.00
구분 : 사진필름류 > 사진
기증자 : 민주화추진협의회
요약설명 : 의원, 민주산악회 산악대장 )가 빨치산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남부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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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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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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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삶에 비유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자의 편에 섰던 소선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더 나아가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평생을 봉사하며 살았다. 소선의 장례는 시민장으로 치러졌으며 모란공원, 꿈에도 그리던 아들 전태일의 뒤편에 묻혔다. 약 9년의 세월이 지난 2020년 6월 10일에 열린 제33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이소선은 국민훈장 모란장에 추서되었다. 정지아(소설가)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1990년 실천문학에서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창비에서 소설집 "행복", "봄빛" 출간. 은행나무에서 소설집 "숲의 대화" 출간. 이효석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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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님, 총무님, 우리들의 총무님_ 김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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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한림은 언제나 뒷줄에 서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제법 했다는 사람조차 김한림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림은 언제나 총무를 자처했다. 회장으로 나서라는 말에는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한림이 원한 것은 명예나 박수가 아니었다. 한림은 어머니였고, 그 어머니의 손길처럼 세상의 구석구석, 남이 돌아보지 않는 곳을 돌아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정지아(소설가)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1990년 실천문학에서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창비에서 소설집 "행복", "봄빛" 출간. 은행나무에서 소설집 "숲의 대화" 출간. 이효석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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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동행_ 이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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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사람을 잘 아는 한 지인은 ‘김대중 정권 지분의 40퍼센트는 이 여사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희호는 김대중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매일 철학적, 신학적 논쟁거리, 투쟁에 대한 격려를 담은 편지를 보냈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김대중의 행보에 동행했으며 때로는 먼저 힘을 내 격려했다. 그녀는 단순한 아내, 단순한 영부인이 아니라 김대중의 완벽한 정치적 동지였다. 정지아(소설가)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 1990년 실천문학에서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창비에서 소설집 "행복", "봄빛" 출간. 은행나무에서 소설집 "숲의 대화" 출간. 이효석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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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아카이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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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사료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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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당,“대전학생시위는 정체불명 괴한들의 선동에 의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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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3.9
분류 : 정치·사회 상황 > 부정선거의 진행과 정부·여당
요약설명 : 주모자를 검거하였는데 주모자는 과거 빨치산 총사령관의 친척으로 북한에서 내려 온 간첩이라고 주장하였다.『서울신문』1960. 3. 10 조3면 시위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에 따라 대전고등학교 학생들은 평시대로 등교해 수업을 받았다. 학교 측은 부상 학생이 1명이라고 밝혔으나 머리에 붕대를 감은 학생이 너댓명 정도 있었다. 대전고 측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시위이니만큼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고 불문에 붙일 것이라 하였으며 도 문교사회국장 또한 온정적으로 조치를 취할 것이라 하였다. 경찰도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중도일보』1960. 3. 10 3면 ;『조선일보』196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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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대중당 전남도당 준비위원회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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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0.5.20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혁신계활동
요약설명 : 김세원·한상구, 「4월혁명 이후 전위조직과 통일운동」, 『역사비평』 15, 역사비평사, 1991, 401-402쪽. 사회대중당 전남도당에 참가했던 김세원의 회고에 의하면, 사회대중당전남도당 준비위원회 간부직은 구 진보당계에서 모두 맡았다. ML계와 남로당·노동당계가 전력상의 불리함을 이유로 회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 진보당계는 독자세력이 없었고 실질적인 조직 운영은 조공·남로당, 노동당-빨치산계 및 근로인민당 출신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사회대중당 전남도당 준비위는 7.29 총선거가 끝난 후 당 자금을 관리하던 구 진보당계의 박세원과 조중환에게 자금횡령 의혹이 제기되면서 해체되었다. 김세원은 국기열·강석봉·김철·이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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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준비위원회, 통일선언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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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 1961.1.15
분류 : 통일운동과 혁신계활동 > 통일운동
요약설명 : 알려졌다. 장상호는 대구 출신 남로당 당원으로서 경북 성주 산악지대에서 남로당 빨치산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장상호는 비공식적으로 민자통준비위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사회당과 연결되어 있는 통민청 계열인사들로 조직을 정비하였다(이종률, 앞의 책, 238·282쪽 ; 『한국혁명재판사』 제3집, 48쪽).를 발표하였다. 선언서에는 ①우리는 민족자주적이며 평화적인 국토통일을 기한다, ②우리는 민족자주역량의 총집결을 기한다, ③우리는 민족자주의 처지에서 국제우호의 돈독을 기한다 라는 3개 강령이 제시되었다. 또한 1천명의 각계 각층인사명단을 기재하였는데 성명서 말미의 비고란에는 “본 협의회는 정당 사회단체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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